2008년 11월 18일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그간 교회에서 특별새벽기도회라 블로그를 쓰지 못했다가
연이틀 세 번째 글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새벽 세시반부터 일어나 설치기 시작해서 기도회다녀오면 하루종일 몽롱합니다.
그래도 시즌이 시즌인지라 간절함이 생겨 전출을 했습니다. ㅋㅋ
기도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어쨌든 이번 주제는 까딱했다가는 한 달 넘길 것 같기도 하고...
어여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을 쓰려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대학로 최장기공연에 빛나는 뮤지컬 1호선입니다.
(오늘 첨부된 모든 사진은 다 뮤지컬 지하철1호선 홈페이지 출처입니다. www.line1.co.kr)


대학로 최장기 공연!
4000회를 끝으로 11월 2일부터 당분간 공연 종료!!
해외 초청 최다 작품!!
일본, 중국, 그리고 본 공연의 원작이 나온 독일에까지 호평!!
설경구, 황정민, 조승우, 김윤석 등 현재 충무로 최고의 배우들의 산실!!
연출가 김민기의 혼이 담겨진 작품!!

엄청난 스펙(요즘 이 "스펙이라는 말만 나오면 움찔..)을 자랑하는
한국 최고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10월 24일에 대학로에서 보았습니다.
뭐, 이 뮤지컬은 워낙에 유명하니까요.
그간 뮤지컬, 뮤지컬 노래를 해가면서 정작 한국형 뮤지컬은 한 편도 보지 않은 저이기에,
항상 마음에 빚 비슷한 것을 지고있던 작품입니다.
물론 원작은 독일에서 나온 것이지만,
연출가 김민기씨의 각색이 뛰어나고 한국적인 정서를 잘 담아
원작자 Volker Ludwig씨로부터 라이센스를 취득했다고 하니,
지하철 1호선은 한국 뮤지컬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생각됩니다.
앞으로 대학로나 기타 한국 뮤지컬을 많이 관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대학로 나들이를 떠나니, 김종욱 찾기, 싱글즈 등이 제 눈길을 끌더라구요.
(돈이 없어서 그렇지 뭐...)
간단한 줄거리...
백두산 가까이에 사는 연변처녀 "선녀"는 백두산에 관광온 "제비"와 눈이 맞아
덜컥 아이를 임신하였습니다.
제비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그녀에게
"자기를 찾으려면 청량리에 있는 588로 오라"고 말합니다.
순진한 처녀 선녀는 그 말만 믿고 제비를 찾으러 588로 갑니다.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 가는 길,
선녀는 지하철 1호선의 많은 인물들과 만납니다.
좋게 말해 홈리스, 평상 거지들인 전라도 "땅쇠"와 경상도 "문디"를 만나고,
588의 포주인 혼혈아 "철수", 사상범으로 도피중인 대학생 "안경",
일수를 다니는 큰손 "빨간바지", 청량리 노점상들의 정신적 지주 "곰보할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순수한 창녀(?) "걸레" 등을 만납니다.
뿐만 아니라, 지하철 노점상, 자해공갈단, 앵벌이, 날라리, 사이비 교주 등
지하철에 있을법한 다양한 군상들이 나타납니다.
걸레는 도피 대학생 안경을 사랑합니다.
몸은 이미 더럽혀진지 오래지만, 그에 대한 사랑은 순결하고 또한 간절합니다.
그러나 사실 안경은 가짜 대학생.. 걸레의 사랑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우면서도
괜시리 기분이 좋아 다리를 저는 연기를 합니다.
그는 그 나름대로 걸레의 환상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서울을 비판하는 노래를 만들어 사상이 있는 척 하며 구걸하고 다닙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구걸을 하여 번 돈으로 걸레를 사려 하지만,
순수한 사랑을 원했던 걸레는 비관하여, 자살하고 맙니다.
그리고 선녀는, 자신이 그토록 찾기 원했던 제비가
빨간바지가 키우는 호스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낙심하여
연변으로 돌아갑니다.

뭐... 대충 이런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장점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1. 서울과 현 시대에 대한 고찰이 있고, 부조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습니다.
2. 지하철을 타면 꼭 있을 법한 사람들이 총망라 되어있습니다.
3. 라이브 락밴드의 흥겨운 연주가 있습니다.
4. 극 내내 무대에 있는 선녀 역할을 빼놓고는 모든 배우가 최소 5역에서 10역까지 맡는,
멀티 캐스팅이 눈에 띱니다.
특히 4번... 정말 대단하단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방금전까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듯한 표정으로 세상을 저주하던 창녀(걸레)가
2분도 지나지 않아 지하철 한 켠에서 주접을 피우는 할머니로 바뀌는가 하면,
머리를 형광색으로 염색하고 껌을 씹어대는 날라리 여고생(깔탕)이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청소부로 나오다가
또 곧있어서 정신지체아를 데리고 다니는 앵벌이로 바뀝니다.
지하철 역에서 술에 취해 노숙하는 취객은 30초도 지나지 않아 경상도 거지(문디)로 분하더니,
다시 잡상인으로 변했다가 인신매매범으로 바뀌구요...
이런 시스템은 참 많이 쓰이면서도 유쾌합니다.
장진 감독의 "택시 드리벌"이었죠? 택시 드리벌 덕배씨를 빼놓고는 승객들이 1인 다역이었고..
루나틱도 그렇고, 시간을 파는 가게도 그렇고...
배우들의 홀연한 변신이 매우 유쾌합니다. ㅋㅋ
락밴드의 공연도 즐겁구요, 소극장에서 관객들과 호흡하는 배우들의 열정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무엇보다도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있는데,
그냥 말좋아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줍잖게 사회비평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뼈아픈 지적들이 좋았습니다.
"뮤지컬은 즐기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너무 사회비판적인 것은 싫어하는데, 이건 강력하면서도 불쾌하지 않더라구요.
하지만, 공연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미안하지만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먼저 연극 외적인 요소.
매스컴이 너무 설레발을 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걸레의 솔로, "울때마저도 아름다운 너"가 캐츠의 메모리즈 급이라는 기사는
"진짜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물론 뛰어납니다. 08년 캐스팅 김국희씨의 가창력도 대단하였구요. 진심이 전달되었습니다만,
그래도 "메모리즈"급은 아니라는 생각... ^^;
음... Wicked의 "I'm not that girl" 수준은 되겠더라구요.
물론 "울때 마저도..."는 단편적인 예입니다.
그저 "과연 명불허전!" 이라는 말은 나오기 어려웠습니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하고 가서였을까요? 조금은 실망스러웠습니다.
둘째로, 가사전달..
음향 시스템의 문제인지, 배우들의 발성이 문제인지, 그날따라 배우들이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지..
중간중간에 "한국말인데도" 못알아듣는 사태가 발생.
극장 우측 상단에 외국인 관객들을 위해 영어자막을 띄워놓는데,
오죽했으면 영어자막을 보면서 의미를 이해해야 했을까요...
연극 대사적인 요소는 생목소리로, 노래적인 요소는 마이크를 대고 하는 과정에서
그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고 애써 믿고 싶군요..
어쨌든 제가 꼽은 BEST 3 곡입니다.
3. 맞은 편(지하철 승객들)

지하철에 앉으면 심심하죠.
요즘에야 무가지가 있으니까 그렇게 심심하지 않지만,
무가지마저 없으면 참 심심합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죠.
바로 맞은 편 사람들입니다.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어디서 무슨 일들을 하고 살까?
그러다가 엉뚱한 상상도 합니다.
저기 저 예쁜 여자, 나한테 관심 있는건 아닐까?
아우, 저 아저씨봐. 술냄새가 여기까지 나는거 보니, 마누라 속 많이 썩이겠다!
등등등...
바로 그것을 노래하는 것이 "맞은 편"입니다.
이와 같이, 지하철 1호선은 "우리의 삶"을 너무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노래도 흥겹구요, 정말 즐겁게끔 합니다.
가끔 가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서 영어자막을 보고 해석했다니까요!!)
2. 싸구려(지하철 잡상인)
세상에 이렇게 흥겨운 노래가 있었을까요?
엄숙한 장면, 중절모를 쓴 바바리코트맨이 낮은 베이스톤으로 실례를 구합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만담형식으로 고래고래 상품소개를 합니다.
고무장갑과 천원짜리 잡동사니 모음..
완벽하게 우리 생활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박수칠 뻔했습니다.
종종 지하철에서 싸구려 물건을 사는데, 그 사람들 오버랩이 되기도 하구요.
특히 그 스믈스믈한 댄스.. 최강이었습니다. ㅋㅋ
얼마전 3000회 공연인가? 미남배우 조승우씨가 "잡상인" 역할을 맡았다죠?
보지는 못했지만, 생각만 해도 우습습니다.

1. 산다는게 참 좋구나, 아가야..(곰보할매)
(중략)
기분좋은 온갖 냄새. 아주 작은 소리들. 지하철 달려가고 어린애들 싸우는 소리.
거리에 넘쳐나는 다정한 눈빛들. 내게 보내는 미소 이게 바로 행복이지.
산다는 게 참 좋구나, 아가야. 이제 새 날이 시작되니 더더욱 좋아.
내 맥박은 뛰고 내 혼백은 살아. 남산엔 단풍잎이 흐드러졌네.
저 한강물 위로 물새가 날으면. 산다는 게 참 좋구나, 이 서울에.

지하철 1호선은 여성 솔로가 많은 뮤지컬입니다.
오히려 남성 솔로는 거의 없구요,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많습니다.
선녀, 걸레, 빨간바지 등 강한 캐릭터의 배우들이 솔로로 그들의 삶을 노래하지만,
제가 생각한 최고의 솔로는 곰보할매의 솔로, "산다는게 참 좋구나 아가야..."
삶에 대한 관조적인 자세로, 의미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깨우칩니다.
절망하는 선녀를 위로하며 나지막하게 노래를 부르는 곰보할매,
전쟁중에 남편과 자식들을 다 잃고, 창녀촌에서 태어난 흑인 혼혈 철수를 아들과 같이 여기며,
불합리하게 구는 노점상 철거 요원들과 당당히(?) 맞서기도 하는 할머니.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지만, 남산에 단풍잎이 흐드러지고, 한강위로 물새가 날아 다니는 것을
본다는 것 자체만으로 삶이 참 좋다는 그녀의 삶의 이야기가 참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물론 락 뮤지컬 답게 여러 곡들이 흥겹습니다.
예를 들어 땅쇠(문디였나?)와 지하철 청소원, 그리고 휴가장병이 나와
각자의 떠난 사랑을 생각하며 부르는 "이름모를 연인들"도 좋구요,
제비(가 부르는지, 아니면 그날 그 노래를 부르신 분이 제비역할을 했는지)가
부르는 인터미션 이후 2부 첫곡 "지하철을 타세요"는 주제곡.. 맞죠? 즐거웠습니다.ㅋㅋ
강남 사모님들이 나와 옛날이 좋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구요.
이건 유쾌하지 않는 주제이지만, 풍자의 대부분이 그런거잖아요. 불편하지만 흥겨운거..
그런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장면은 노래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끝나는 시점, 즉 선녀와 안경이 듀엣을 부르기 전 땅쇠와 문디가 나와 이야기합니다.
"이봐, 거기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건 어때?"
"택시? 무슨 말이야, 우리같은 사람들(=거지)을 태워주는 것은 지하철 뿐이야.
지하철을 타고 가자구"
"왜? 그만한 돈 있어!"
"돈이 있으면 뭐해, 태워주지를 않는데?"
"음... 그래, 우리를 맞아주는 것은 지하철 뿐이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내용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택시와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지하철과 같은 사람일까?
사람 꼬락서니 봐가며 가려서 사귀는 사람일까?
아니면, 그런것과 상관 없이 누구든지 쉬었다가 갈 수 있는 큰 나무와 같은 사람일까?
사실, 지난 입사원서에 "나를 표현하라"에다가는 지하철과 같은 사람이라 이야기했지만,
과연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 by | 2008/11/18 17:33 | "The Musical"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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